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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가만히 좋아하는 - 김사인 (2014, 창비) 누군가는 물어봅니다, 시집을 왜 읽냐고.그 질문에 딱 맞는 이유는 없지만, 한 가지 점은 분명합니다. 시(詩)는 분명 저를 항상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실 이 편안함이 제가 시(詩)를 읽는 전부일겁니다.누군가로부터 상처입어, 뾰쪽하게 날이 설 때마다, 시집 속의 시어(詩語)들은 저를 위로하고, 그 감정의 뾰쪽함을 무디게 만들어 줍니다.시인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등 어릴 적 뜨거웠던 시집들을 마주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겁니다. 고등학교때는 무언가 쓰고 싶어서 시(詩)라 하기엔 민망한 잡설들을 끄적대기도 했습니다.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치만 그 중 하나의 제목은 ‘타락한 천사에게’ 였습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상처입어, 그 울분(?)을 달래.. 더보기
006 뒷모습 (Vues de dos) - 미셸 투르니에 • 에두아르 부바 (Michel Tournier • Édouard Boubat) • 김화영 (2019, 현대문학) 방송일에 쫓겨 하루에 30~40씬씩 찍어대는 날들이었다. 그날도 18시간의 촬영을 마치고 편집실에서 가편본을 보고 있었다. 겨울이었고 장시간의 촬영을 한 후, 따뜻하고 어두운 편집실에서 몇 번씩 같은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잠이 스물스물 스며들곤 했었다. “감독님, 백샷 좀 찍어주세요” 꾸벅꾸벅 졸다가 깜짝 놀라 편집하시는 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나마나한 변명. “아…예… 낮씬은 좀 찍었는데 밤씬은 라이트를 뒤집어야 해서… 시간 때문에…” “네. 그래도 힘드시더라도 찍어주시면 배우들의 감정이 조금 더 풍부해질 거 같아요” ‘감정의 풍부함’ 그래, 앞모습에서는 알 수 없었던 감정의 다른 부분들을 때론 뒷모습에서 찾아내곤 했다, 그 감정이 무어라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명절 연휴를 보내고 서울로 돌.. 더보기
005 공산당선언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Karl Marx • Friedrich Engels) • 이진우 (2012, 책세상)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꼭 미묘한 사건이 없더라도 학교 정문 앞에 쭉 늘어선 경찰과 전경들이 등하교길의 학생들을 불심검문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신분증과 학생증을 요구하고, 가방 속의 물품들을 다 꺼내어 뒤져 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물론 법적으론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민등록증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고향 주소지로 인해 경찰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매번 받아야만 했지만 한 두번 겪다보면 익숙해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실 가방에 뭐가 있는 지도 모른채로 등교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은 숙취로 인해서지만) 문제의 소지가 있는 책들이나 인쇄물들은 거의 담아두지 않았다. 막스 베버의 서구 자본주의 성립과정을 다룬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 더보기
004 모비 딕(Moby Dick; or The Whale)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 김석희 (2014, 작가정신) 재밌는 소설, 이야기. 내게 있어 재밌는 소설? 이 물음은 ‘좋아하는 작가는?’이란 물음과는 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오에 겐자부로, 필립 로스, 박경리, 천명관, 박완서, 오정희, 윌리엄 포크너, 아베 코보, 살만 루슈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버지니아 울프, 세르반테스도 좋아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들의 소설들을 조금이나마 읽었다고 하기엔......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야기들은 정말 재밌지만 왠지 조금 부족한듯 갈증이 났고, 최윤, 이승우 작가는 열렬한 팬이다. 앞으로 더 재밌게 읽을 소설이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재밌었던 소설 한권을 뽑으라면 ‘모비 딕’이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캐릭터에 완전히 압도되었던 소설. 캐릭터에 의해 이야기가 발전하고, 그 발전한 이야기.. 더보기
003 이십억 광년의 고독(二十億光年の孤独) -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郎) • 김응교 (2009, 문학과지성사)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딱 이 한 구절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을 찾아보게 된 건 딱 이 한 구절의 싯구였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라니 후 시집을 읽는 동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즐거움이란 나를 넘어서는 함께함이라고들 하지만 이 시집을 읽으면서는 그냥 혼자 있음에 그렇게 오롯이 시에 취할 수 있음에 즐거웠다. 스스로 행복하고 스스로 즐거울 수 있음을 알려준 고마운 시집. (사실 외국어로 쓰인 시는 시를 읽는 동안 번역에서 오는 갸우뚱거림이 있다. 근데 이건 내가 그 언어로 씌여진 원시를 읽기 전에는 아무리 번역을 잘했다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언어에 대한 욕구만 쌓여간다.) 인류는 작은 공[球] 위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더보기
002 율리시스(Ulysses) -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 김종건 (2007, 생각의 나무) 누구나 힘들고 아플 때가 있다 다만 그 시기와 빈도의 문제. 어느 때, 얼마나 자주. 샤워를 하다 문득 비친 모습. 내가 보아도 내가 아닌 앙상한 누군가. 무작정 내려갔다. 면역력 저하. 아무 것도 염려치 말고 회복에 집중. 아무 것도 염려치 않으려고 애쓰는게 오히려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시간표를 준비했고, 거기에 맞춰서 일상을 꿰메었다. pm 2:00 ~ 6:00 도서관 한쪽 책장에 묵직하고 커다란 책. 율리시스. 그냥 읽었다. 이해나 독해가 아닌 글자 그대로 글자를 읽었다. 하루에 100페이지. 읽다가 지치면 좀 쉬다가 다시 그냥 읽었다. 읽었던 곳을 다시 읽어도 상관없었고, 무언가를 놓친 것 같으면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다시 읽었다. 너무 크고 무거운 책이여서일까? 아무도 대여하지도, 읽지도 않는 .. 더보기
001 노동의 새벽 - 박노해 (1984, 풀빛) 아마 술에 취해 있었을거야. 생일 선물로 받았던 (아마 풀무질에서 샀겠지?) 꽤 많은 책들중에 이 시집을 왜 하숙방 구석에 들어서자마자 집어들었을까 아마 술에 취해 있었을거야. 그렇게 한 구절 한 구절 읽다가 ‘손 무덤’이란 시에서 와락 터졌을거야. 왜? 왜 난 오열했을까? 왜 난 그렇게 설움을 힘주어 삼킬 수 없었을까. 아마 술에 취해 있었을거야 꼬박 밤을 세우다 잠깐 선잠에 뒤척이다 눈을 떴을 때 숙취와는 조금 다른 뒷목의 생채기. 손 무덤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