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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공산당선언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Karl Marx • Friedrich Engels) • 이진우 (2012, 책세상)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꼭 미묘한 사건이 없더라도 학교 정문 앞에 쭉 늘어선 경찰과 전경들이 등하교길의 학생들을 불심검문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신분증과 학생증을 요구하고, 가방 속의 물품들을 다 꺼내어 뒤져 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물론 법적으론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민등록증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고향 주소지로 인해 경찰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매번 받아야만 했지만 한 두번 겪다보면 익숙해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실 가방에 뭐가 있는 지도 모른채로 등교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은 숙취로 인해서지만) 문제의 소지가 있는 책들이나 인쇄물들은 거의 담아두지 않았다. 막스 베버의 서구 자본주의 성립과정을 다룬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이란 책을 가지고 있었던 학생이 막스 베버와 칼 막스 이름의 유사함으로 연행되었다는 우스개스러운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으니 더더욱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치만,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동저작인 이 책은 정말 피해야할 책이었다. 물론 그렇기에 더더욱 궁금한 책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학추천도서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시대지만, 그 당시 마르크스의 저작물들의 소지는 연행대상 1호였고, 책 제목이 무려 ‘공산당선언’이었기에 이 책은 저를 연행해주세요라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문제가 될 만한 책들은 더러 책표지를 다른 표지들로 감추기도 했었다, 주로 ‘월간조선’이나 ‘신동아’라는 잡지를 사용해서. 
 
책장에 아직 표지가 감추어진 채로 꽂혀 있는 이 책을 보면서 (왠지 이 책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선언에 대해 생각해본다. 약자에 대한 혐오와 자본의 자기 증식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 대해서도. 
 
현재 가지고 있는 책은 대학 재학시 읽었던 판본과는 다르다. 그 당시 판본은 기억이 정확하진 않치만, 아마 조금은 조잡한 리플렛 형식의 인쇄물이었을 것이다.
 

#BorntoRead_HR 이란 태그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책 정리. 얼마나 할 지, 언제 할 지, 어떻게 할 지, 얼마만큼 할 지 알 수 없지만 문득 문득 한 권씩, 한 장씩, 한 자락의 기억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