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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一世紀映畵讀本] 라이브 플래쉬 (Carne Trémula) directed by Pedro Almodóvar

 

 

 

육체에 집착하고, 꼬여 있으면서 묘하게 격정적인 감정들, 분노, 스페인 특유의 화려한 색채 그리고 잔인한 유머.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의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특별한 자기만의 스타일로 잘 알려진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7년作 '라이브 플래쉬'는 우리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간의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이 흔히들 말하는 영화의 정공법 -잘 짜여진 플롯, 인물들과 사건 사이의 유기적 연결, 시·공간의 조화 등-을 무시하고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어색했지만 한편으로는 환호하며 그만의 영화를 즐기는 재미를 맛보고는 했다. (이러한 이유로 알모도바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감독이라 불리기도 했다.)

'라이브 플래쉬'는 이러한 즐거움을 찾기 힘든 영화이다. 이번에 알모도바르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영화 속에, 영화의 정공법 안에 숨기고 나타났다. 마치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보여주는 듯. 이러한 알모도바르의 의도는 영화에 전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고, 또한 그런 모습은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환호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성숙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그의 재기 발랄한 모습이 눈에 띄게 수그러든 것 같은 안타까움도 든다. 물론 그의 다음 영화를 좀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라이브 플래쉬'의 구성상 가장 큰 특징은 영화적 구성이 순환적이라고 하는 점이다. 정확하게 영화의 시작과 끝은 수미상관의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스페인의 거장 루이스 브뉴엘(Luis Bunuel)의 영화 '범죄연습(Ensayo de un crimen)'이 TV에 흘러나오고 있는 장면에서는 영화의 내용과 거의 같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알모도바르의 루이스 브뉴엘 감독에 대한 오마쥬는 이 장면 외에도 배우 캐스팅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순환적이고 인과관계가 분명한 구성은 '라이브 플래쉬'를 탄탄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다. 또한 이러한 구성이 그간 알모도바르 영화에 대해 평론가들이 싫어했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구성에 대한 불만들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또 하나 '라이브 플래쉬'의 흥미로운 점은 배우들의 캐스팅에 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Antonio Banderas)를 헐리우드에 빼앗기고 분통해 마지 않았다는 알모도바르는 이번 영화에서 스페인 최고의 배우들로 캐스팅을 완료했다. '하몽하몽 (Jamo, Jamo)'의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 '안나이야기(Dispara!)'의 프란체스카 네리(Francesca Neri), 제 2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불리는 리베르토 라발(Liberto Rabal), '하몽하몽 (Jamo, Jamo)' '오픈 유어 아이즈 (Abre Los Ojos)'로 우리에게 친숙한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 등은 그 이름들만큼이나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휠체어 농구 선수 연기를 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이 영화의 연기자들 중 단연 돋보인다. 또한 클라라(Clara)역을 연기한 앙헬라 몰리나(Angela Molina)는 루이스 브뉴엘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 (Cet Obscur Objet du dir)'에서 정열적인 콘치다(Conchita)역으로 열연한 배우인데 이 배우의 캐스팅에서도 루이스 브뉴엘에 대한 알모도바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라이브 플래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는 다음의 3 장면을 꼽아볼 수 있다.

첫 번째, 영화의 첫 시퀀스인 빅토르를 버스 안에서 낳는 시퀀스이다. 여기서 가장 빛나는 것은 브라질 출신의 촬영 감독 아폰소 베아토(Affonso Beato)의 카메라이다. 아무도 없는 거리의 버스 안에서 마치 조심스럽게 출산의 환희를 같이 경험하려는 듯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버스에 접근하며 출산 장면을 마치 베들레헴의 말구유처럼 잡아내고 있다.

두 번째, 엘레나(Elena)의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알모도바르는 그 특유의 심리적인 앵글과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앞의 첫 시퀀스에서 유연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퀀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격한 움직임과 상황들을 편집과 과도한 앵글로서 격하게 잡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빅토르(Victor)와 엘레나(Elena)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이 영화의 스페인 원제(미국 제목은 '신선한 육체'이지만 스페인어로의 뉘앙스는 '살아 꿈틀거리는 肉' 정도로 번역된다.)처럼 마치 육체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히고 인간의 육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라이브 플래쉬'에서 유심히 봐야할 점은 알모도바르가 그리고 있는 장애인의 삶의 모습이다. '라이브 플래쉬'에서 그려지는 농구 스타 장애인의 모습은 흔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고난한 삶을 이겨낸 영웅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특별한 동정을 받지도 않는다. 그는 너무도 일반인과 같은 감정들을 갖고 있다. 증오, 연민, 사랑, 질투 등등. 그러한 모습으로 알모도바르는 장애인을 여러 인간 유형 중의 하나로 그릴 뿐이다. (하반신 불구인 데이빗(David)과 엘레나(Elena)의 목욕탕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새삼 놀랍다.)

마지막으로 그간 너무나 탈 정치적인 영화기에 오히려 정치적이었던 알모도바르는 '라이브 플래쉬'에서는 약간의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첫 시퀀스의 암흑의 프랑코 정권하의 거리와 그 후의 마지막 시퀀스의 활기에 찬 거리의 모습, 그리고 영화 초반부의 프랑코 정권을 비꼬는 장면에서 우리는 알모도바르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알모도바르의 이번 영화 '라이브 플래쉬'는 그의 그간의 필모그라피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영화이다. 이제 그의 영화는 예전의 영화와는 달리 다른 방향으로 한 발자국 나선 것 같다. 그의 이 한 발자국을 쫓아가며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재미를 느끼는 것도 영화만의 매력이 아닐까.

 

 -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óvar) Filmography


        *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 (Pepi, Luci, Boom y Otras Chicas del Monton) / 1980
        * 정열의 미로 (Labertinto de Pasiones) / 1982
        * 나쁜 버릇 (Entre Tinieblas) / 1983
        * 내가 무슨 일을 했길래 이런 대접을 받나요? (Que He Hecho Yo para Merecer Esto) / 1984
        * 마타도르 (Matador) / 1986
        * 욕망의 법칙 (La Ley de Deseo) / 1987
        *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Mujeres al Borde de un Ataque de Nervios) / 1988
        * 욕망의 낮과 밤 (Atame!) / 1989
        * 하이 힐 (Tacones Lejanos) / 1991
        * 키카 (Kika) / 1993 - 비디오 출시
        * 비밀의 꽃 (La Flor de Mi Secreto) / 1994
        * 라이브 플래쉬 (Carne Tremula) / 1997
        * 내 어머니의 모든 것 (Todo sobre Mi Madre) / 1999
        * 그녀에게 (Hable con ella) / 2002
        * 나쁜 교육 ( La Mala Educación) / 2004
        * 귀향 (Volver) / 2006
        * 브로큰 임브레이스 (Los Abrazos Rotos) / 2009
        * 내가 사는 피부 (La Piel que Habito) / 2011
        * 아임 소 익사이티드 (Los Amantes Pasajeros) / 2013
        * 줄리에타 (Julieta) / 2016
        * 페인 앤 글로리 (Dolor y Gloria) / 2019
        * 패러렐 마더스 (Madres Paralelas) / 2022
        *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 2024

 

* 본 글은 대자보 22호(1999.10.5)에 발표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