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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一世紀映畵讀本]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Crna macka, beli macor) directed by Emir Nemanja Kusturica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이후 에밀 쿠스트리챠(Emir Nemanja Kusturica)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물론 "설마 정말 영화를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언더그라운드'로 비정상적인 융단 폭격을 받은 그로서는 어쩌면 정말 심각하게 고려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르비아계를 옹호했다는 서방의 공격과 反세르비아계의 영화라는 세르비아 측의 이야기들은 에밀 쿠스트리챠를 분명 난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진짜로 영화를 그만 둘까? 그만두면 안 되는데. 이건 분명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계의 또 다른 한 명의 천재라고 불리는 그의 영화를 다시금 볼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우울한 이야기이다. (특별히 에밀 쿠스트리챠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화 말고는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이 어쩌면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전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영화인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를 가지고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정말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는 그의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제는 그의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의 짐을 지고 나오는 것을 보기 싫다고 말한 그의 인터뷰 내용대로 이번 그의 영화는 어찌 보면 코미디이고 어찌 보면 신나는 한 판의 놀이이다. (이점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동안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의 그의 영화를 보던 사람들의 그 찡그린 얼굴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극장에는 관객들의 웃음이 넘쳐흘렀다.) 물론 아직도 여전히 그의 영화에서 완벽한 줄거리는 찾을 수 없고, 영화의 극적 구성의 중요 모티브는 음악이며, 중심 인물들은 집시들이고, 집시들의 대책 없는 쾌락주의와 슬픔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쿠스트리챠가 집시들의 생활에서 찾는 인생의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영화에서 찾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집시들의 생활에서 어떠한 규칙이나 시공간적인 문명의 발전의 모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그들의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고급 승용차나 핸드폰 등은 그들이 문명의 이기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집시들이 보고 있는 영화 '카사블랑카 (Casablanca)'와 '스트리츠 오브 파이어(Streets of Fire)'사이의 시대적 간극을 집시들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는 만큼 그들은 시공간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있다. (갑자기 영화를 보면서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영화 속에서 '이다(Ida)'가 영화 '스트리츠 오브 파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다이언 레인(Diane Lane)이 립싱크한 '노 웨어 패스트(No Where Fast)'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은 몰래 시골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였다. (이런 재미도 있는 법.) 아직도 여전한 집시들의 낙천적인 모습은 때론 영화를 보는 동안 답답하게 만들고,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을 보고 느끼면서 나도 한번 저렇게 살아 봐 하고 바라는 것이 나의 바램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쿠스트리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쿠스트리챠의 이번 영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에서 볼 수 있는 쿠스트리챠의 변화는 바로 어떻게 현실과 자신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 주술적 분위기를 아울렀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현실에 기초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쿠스트리챠는 그의 영화를 현실에만 발을 붙여놓지는 않고 있다. 군데군데 정말 뜬 구름 잡는 이야기(자동차를 먹는 돼지, 엉덩이로 못을 뽑는 여자 가수, 흰 거위를 가지고 자신의 더러워진 몸을 닦는 '다단(Dadan)')들로 리얼리즘을 제거해 나간다. 그리고 쿠스트리챠는 여기다가 자신의 몽환적인 분위기, 그리고 마술적인 분위기를 버물려서 자신의 독특한 리얼리즘과 영화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의 전작들처럼 몽환적인 모습들 속에서만 발버둥치고 있지는 않다. 관객들과 마치 이러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들 속에서 쿠스트리챠의 이런 영화 만들기는 충분히 성공한 듯 하다. 이런 쿠스트리챠의 영화에 잘 적응이 안 되는 관객들도 필시 있을 것이다. 또한 영화는 상당히 소란하고 시끄럽다.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들도 있구나 하는 조금은 부담 없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면 쿠스트리챠의 이번 영화는 매우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 분명하다. 헐리우드의 스테레오 타입의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P. S - 제목인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는 영화 안에서 아주 자주 나타난다. 때로는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를 조용히 관망하고, 어쩔 때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영화의 전체적인 시퀀스들을 조율하고 있다. 검은 고양이의 안 좋은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흰 고양이를 짝을 지웠다는 쿠스트리챠의 말대로 쿠스트리챠가 바라는 화해의 마음은 두 고양이의 교미 장면에서 절정을 만들어 낸다.

 


  - 에밀 쿠스트리차 (
Emir Nemanja Kusturica) Filmography

* 구에르니카 (Guernica) / 1978

* 돌리 벨을 아시나요 ? (Sjecas li se Dolly Bell ?) / 1981

* 아빠는 출장중 (Otac na sluzbenom putu) / 1985

* 집시의 시간 (Dom za vesanje) / 1989

* 애리조나 드림 (Arizona Dream) / 1993

* 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 / 1995

*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Crna macka, beli macor) / 1998

* 화이트 호텔 (The White Hotel) / 2000

* 삶은 기적이다 (Zivot je cudo) / 2004

* 약속해줘! (Zavet) / 2007

* 축구의 신: 마라도나 (Maradona by Kusturica) / 2008

* 신과의 대화 (Words with Gods segment Our Life) / 2014

* 온 더 밀키 로드 (On the Milky Road) / 2016

* 엘 페페, 어 슈프림 라이프 (El Pepe, una vida suprema) / 2018

 

* 본 글은 대자보 22호(1999.10.15)에 발표된 기사입니다.